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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문학의 현실과 전망

2. 전후시기 문화계의 魯迅熱

4.2 대만문학의 현실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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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뿐만 아니라 중국 서적이 이제 대만에서도 다시 출간되는 등 유통이 자유로 와 매우 짧은 시간에 수많은 중국 근대문학, 특히 루쉰, 선충원(沈從文), 라오서 (老舍)등 중국 20-30년대의 작품이 대만으로 유입되어 40년 간의 지식계의 공백 을 채워주었다.

먼저 루쉰문학의 출판상황을 살펴보면, 1989년 9월 당산출판사가 간행한 총 13 권의『루쉰전집』은 1947년 루쉰전집출판사가 상하이에서 발행한『루쉰삼십년집 (魯迅卅年集)』을 바탕으로 루쉰의 편지, 일기 등을 추가하여 펴낸 것이었다. 곡 풍출판사의 경우는『루쉰전집』을 펴내기 전에 1987년에 이미『외침』과『방황』

등 루쉰의 소설집을 발행한 바 있다. 1989년에 나온『루쉰전집』은 중국 인민문 학출판사의 『 루쉰전집 』 (1981)을 번체자로 바꿔 다시 출판한 것이었다. 그런데 인민문학출판사의 전집은 편집인의 해설을 곁들인 각주판이었는데 비해 대만에 서 재판할 때 출판사에서 원본의 정치적 의도가 강한 해설부분을 다소 삭감하였 다. 그리고 풍운시대출판사는 1989년 10월 루쉰의 편지를 제외한『루쉰작품전집』

13권을 출판했는데 1991년 9월 이를 다시 재출판 하였다. 또한 2010년 8월에는

『외침』,『방황』,『고사신편(故事新編)』,『아침꽃을 저녁에 줍다』그리고『중 국소설사략』등 총 5권의 루쉰작품 베스트 시리즈를 펴냈다.

이들 전집 이외에 루쉰의 어록, 자서전 및 논문집도 출판되었다. 이를테면『루 쉰어록(魯迅語錄) 』 (1987, 文強堂), 『 루쉰자서전(魯迅自傳) 』 (1993, 龍文出版社),

『루쉰소설논문집: 중국소설사략과 기타』(1992, 里仁書局)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계에서도 루쉰에 대한 논의 공간이 생겼으므로 신문 잡지에 관련된 보도와 특간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계엄 해제 석 달 뒤인 1987년 10월,『당대잡 지(當代雜誌)』는 루쉰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위해‘루쉰 특집’을 마련하였다.

또 1991년 루쉰 서거 110주년을 맞이하여『국문천지(國文天地)』는‘루쉰이 대 만 문학계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특간호를 발행했다.

4.2 대만문학의 현실과 전망

70년대 이후의 대만문학은 대만 본토를 중시함과 동시에 대만문학의 뿌리를 찾는 풍조도 강해져 대만역사와 대만문학사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돌입했다.

『하조(夏潮)』,『대만문예』등 문학지를 통해 일본 식민지시기의 문학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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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소개되면서 오랫동안 문단에서 사라졌던 라이허, 양쿠이 등의 작품이 다 시 세상에 새로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식민지시기의 문학작품들이 재출 판되거나 번역되어 대만문학의 토대를 확립하는 데 공헌했을 뿐 아니라 중국과 구분되는 대만중심의 본토의식도 생겨나게 되었다. 70년대 향토문학논쟁이 벌어 질 때 대만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천잉전(陳映真)은「향 토문학의 맹점(鄉土文學的盲點)」이라는 글로 앞서 언급한 예스타오의‘대만의 식’논점을 반박했다. 천잉전(1937-2016)은 대만 향토문학에 대해‘중국 5.4 계 몽 운동에서 연유한 백화문학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전체 발전과정은 중국 반 제국, 반봉건의 문학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97 즉, 그는 좌익 중화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대만의식도 중국의식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루쉰 수용 역시 사회주의 사조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루쉰 의 문학이 아직 금서였던 시대에‚한번은 서재에서 아버지가 화를 입을까 봐 태 우려고 했던 루쉰의『외침』을 찾았다.…그때부터 검붉은 책표지로 싸인 소설집 은 그의 청춘과 함께 했다.‛98처럼 천잉전은 어린 시절부터 루쉰의 문학을 접 하면서‘루쉰이 나에게 운명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으며‘여태까지 루쉰을 따라잡을 수 있는 중국 작가는 없다’고 루쉰을 높이 평가했다.99 그는 루쉰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식인으로서 양심에 의거해 사회를 냉철히 관찰하고 사유하면 서 창작활동을 했다. 「문서(文書)」와「밤안개(夜霧)」등 그의 많은 작품에서 루쉰 문학과 유사한 곳을 찾을 수 있다.100 이러한 좌익성향으로 인해 천잉전은 1968년부터 7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출감 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국민당 정권의 압박, 계급 간의 갈등, 자본주의의 착취 등 대만에 존재하던 사 회적 불평등을 더욱 치열하게 비판했다. 흔히 그의 삶과 작품은 파노라마처럼 대만 현대사의 진전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며 천잉전 또한 대만에서의

‘루쉰 계승자’라고 여겨지고 있다.

1990년대의 대만 문학연구는 대체적으로‘식민’과‘피식민’의 이원적인 대

97 許南村(陳映真), 「鄉土文學的盲點」,『台灣文藝』55기, 1977.

98 陳映真,「後街」,『我的弟弟康雄』, 洪範書店, 2001, 15면.

99 陳映真,「陳映真的自白—文學思想及政治觀」,『陳映真作品集6』, 人間, 1988, 35면.

100 천잉전과 루쉰의 비교연구는 黃繼持,『魯迅〮陳映真〮朱光潛』, 牛津大學出版社, 2002; 呂正惠,

「陳映真與魯迅」, 封德屏 편,『陳映真創作50 週年國際學術研討會論文集』, 文訊, 2009; 曹笑 笑,『從文學出發的左傾:魯迅和陳映真的小說創作與文藝思想之比較』, 清華大學台灣文學研究所, 석사학위논문, 2017 등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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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시각으로 해석되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항일담론의 재확대라고 볼 수도 있는 데 일본 식민지와 관련된 문학작품은 자연스럽게‘저항’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구방법을‘대만의식’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면 대만 본 토론의 확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복잡한 역사적〮정치적 배경조건으로 인 해 대만은 끊임없이‘주체성의 재건’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대 만의식은 형성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문화의 주체적 재건 과정에서 국민당을 비 판하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정치적으로 반대당운동이 지속되면서 문단, 학계에 서도 그 영향으로 정치적인 담론을 반영하게 되었다. 즉, 어느 시대든 대만문학 과 연구는 늘 정치적 요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중국이‘하나의 중국’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루쉰과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양안의 정치적 상황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은 국력의 부흥을 배경으로‘하나의 중국’정책을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다. 그에 대한 반발로‘대만 내셔널리즘’혹은 대만 독립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대만사람들은 중국의 일부로서의 대만을 강렬 히 부정하면서 독립적 존재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만 학술계에서도

‘중국문학’보다는‘대만문학’이 더욱더 뚜렷한 우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루쉰을 식민지 시대처럼‘조국’인 중국 작가로 받아들이지 않 고,‘외국’인 중국 작가로 보는 시각마저 나타났다. 90년대 이후의 대만 루쉰 연구는 식민지 시대의 대만 작가가 동시대 문학인 루쉰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혹은 해방 직후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루쉰이 어떤 작용을 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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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루쉰문학의 한국 전파와 수용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