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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한 연구 노선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며 루쉰의 좌파 경향이 은폐되는 대신 자연주의적 휴머니스트란 언표가 가능했다. 이후 70년대 냉전체제의 완화, 그리 고 민주화담론과 함께 사회주의적으로 루쉰을 재인식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한국의 루쉰 수용맥락을 전반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제5장 결론: 루쉰이 매개한 역사인식과 문학향방에서는 대만과 한국의 루쉰 수용 양상을 비교하여 양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규명하고 그 원인과 배경을 살 펴 볼 것이다. 루쉰이 매개한 양국의 각 시기별 역사인식과 문학향방의 특징을 정리하며 루쉰 수용을 통해 양국의 지식인, 문인들이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양국의 역사, 사회, 문학적 단면과 문제점을 짚어볼 것이다. 상술한 각장의 논 점을 종합하고 본 논문의 의미와 한계를 정리할 것이다.
3. 선행연구 검토
3.1 대만의 루쉰 수용 연구
대만의 근대화는 봉건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내부적 움직임과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일본 식민지 상황, 그리고 대륙을 사이에 놓고 있던 중국 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대만의 근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서는 이러한 영향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인간 정서나 사상을 언어 를 통해 표현한 소위 ‘문학’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주변국가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대만의 지식인들이 문학을 통해 어떻게 정체성 을 지켜나가며 근대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면, 그 중심에는 바로 루쉰 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신문학운동의 선도자인 루쉰이 대만문학의 발전 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중국과 대만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대만에서‘루쉰’이라는 텍스트를 어떻 게 수용하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대만의 근대문학이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해 나 갔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루쉰과 대만 문학의 관계를 밝히는 데 있어 중점에 두어야 할 점은 루쉰의 영향력에 대한 과도한 맹신보다는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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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매개로 하여 신문학을 사고했던 대만 문단 내부의 움직임이라고 하겠다.6 이 러한 문제의식은 대만문학이 중국문학이란 큰 흐름에서 파생되어 형성된 것이 아닌 독자적인 영역으로써 접근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대만에서 최초의 루쉰 수용 연구는 일본학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7 1990년대 일본학자 나카지마 도시로우(中島利郎), 시모무라 사쿠지로우(下村作次郎), 사 와이 노리유키(澤井律之)를 통해 대만문학과 루쉰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 으로 전개되었다. 나카지마는 광복 이전을 세 시기(1923-31: 루쉰 문학의 소개, 1932-36: 수용과 발전, 1937-45: 잠재기)로 나눠 다루었고, 시모무라는 전후초 기 대만문단의 개황을 다루었다. 시모무라는 중국어-일본어 대조판본에서 루쉰 작품이 수록된 것에 의거하여 그 당시 대만의 국어교과서에 중국어 학습이란 교 육기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조국’의 우수한 근대문학 명작으로 루쉰을 수 용하였다고 파악했다. 또한, 전후시기의 루쉰 수용은 식민지시기부터의 신문학 운동을 통해 지식인의 루쉰 수용에 기반하여 함께해 왔다고 밝혔다. 그중 전 후초기의 루쉰 수용이 비교적으로 상세히 연구되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보기 힘든‘루쉰열 ’ 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전후시기는 루쉰 수용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간은 짧지만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대만의 루쉰 수용에 대해 통시적인 관점에서 처음으로 논의한 사람은 천팡밍 (陳芳明)이다. 그에 의하면 해방 전후 대만 작가가 발표한 논평을 통하여 당시 루쉰은 대만 지식인에게 존경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중 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작가의 경우에는 일본어로 루쉰을 이해하고 수용한 것을 통해 이들이 루쉰을 단순히 중국작가라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문학가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차이야오전(蔡耀振)는 루쉰 작품의 국내 번역상황, 신문과 잡지에 실린 지식인들의 비평, 그리고 2000년대까지의 루쉰연구에 관한 학술지 논문 및 학위 논문 등을 통시적으로 정리하였다.8 장칭원(張清文)의 박 사학위논문은 루쉰과 대만 작가 중리허(鍾理和)의 관계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 데 식민지시기부터 반공시기까지의 루쉰 문학 전파 과정을 정리하고 작품을 비
6 陳芳明,「魯迅在台灣」,『典範的追求』, 1994.
7 中島利郎 편,『台灣新文學與魯迅』, 前衛, 2000.
8 蔡耀振, 「 魯迅在台灣—探討台灣對魯迅研究的成果 」 , 『 上海魯迅研究 』 16기, 上海魯迅紀念館, 2005, 108-1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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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분석함으로써 중리허문학에 드러난 루쉰의 흔적들을 탐색하고 있다.9 양제밍 (楊傑銘)은『대만민보(台灣民報)』,『대만문예(台灣文藝)』,『대만신문학(台灣 新文學)』등 자료를 중심으로 식민지 시기 대만 지식인들의 루쉰에 대한 사상적 영향 양상을 분석했다.10 특히 중국 내 루쉰사상 전파과정과 대조하여 차이점을 드러내었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냉전시기 루쉰 수용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졘 밍하이(簡明海)는 대만 근대사의 맥락에서 오사의식의 연장, 전환을 주제로 상 징적인 인물로서의 루쉰을 다루고 있으며 전후시기 루쉰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던 좌익사조에 대한 연구를 탐색하였다.11
또한 황잉저(黃英哲), 쉬슈훼이(徐秀慧) 등이 광복 이후의 루쉰 수용 형상을 개괄적으로 다루었다.12 황잉저는 광복 이후 중화문화 복원의 맥락에서 루쉰 전 파과정을 다루었다. 그에 따르면 그 당시 루쉰의 동향이자 지우였던 쉬서우상 (許壽裳)이 중국에서 대만으로 온 뒤 대만성편역관(台灣省編譯館) 관장을 맡으 며 적극적으로 루쉰의 사상과 전투정신을 소개함으로써 대만에서 민주주의와 과 학정신을 제창하는‘신오사운동’을 발기한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에 룽잉쭝(龍 瑛宗), 양쿠이(楊逵), 란밍구(藍明谷) 등 대만작가들도 한뜻으로 힘을 합쳐 호 응하기도 하고 루쉰에 대한 비평을 통해 중국에서 온 통치계층의 비리문제를 비 판한 배경을 제시했다. 쉬슈훼이는 2.28사건으로 경계를 나누어 사건 전후 대만 의 독특하고 복잡한 사회배경 및 문학사조 변혁을 전반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전후초기 대만이 놓인 역사적.정치적 특수성을 밝히려는 시도에서 그는 이 시 기 지식인들이 정부 당국과 대결하기 위해 어떠한 경로와 방식으로 루쉰의 전투 정신을 수용하여 재생산했는지를 세밀하게 논의했다.
상술한 기존 연구를 통하여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대만문학은 식
9 張清文,『鍾理和文學裡的「魯迅」』, 政治大學中國文學系, 박사학위논문, 2006.
10 楊傑銘, 『 魯迅思想在台傳播與辯證1923-1949—一個精神史的側面 』 ,中興大學台灣文學研究所, 석 사학위논문, 2009;楊傑銘,『冷戰時期魯迅思想的台、港傳播與演繹』, 香港嶺南大學中國文學系, 박사학위논문, 2014.
11 簡明海,『五四意識在台灣』, 政治大學歷史研究所, 박사학위논문, 2009.
12 黃英哲,「許壽裳與戰後初期台灣的魯迅文學介紹」,『國文天地』7권5기, 1991;黃英哲,「戰後魯 迅思想在台灣的傳播1945-49」,『「認同與國家:近代中西歷史的比較」論文集』, 中央研究院近代 史研究所, 1994;黃英哲,『台湾文化再構築1945-1947の光と影—魯迅思想受容の行方』, 創土社, 1999;黃英哲,「黃榮燦與戰後台灣的魯迅傳播(1945-1952)」,『台灣文學學報』2기, 2001;徐秀慧,
「 二二八事件前台灣文化的重建與 「 魯迅熱 」 」 , 『 戰後初期 1945-1949台灣的文化場域與文學思 潮』, 稻鄕,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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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시기와 국민당 정권 계엄시기를 겪으며 발전해 왔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 과 루쉰 수용의 상관관계이다. 그중 대만과 중국의 특수한 관계를 적용해 볼 때, 전후초기까지는 루쉰을 주로‘조국 ’ 의 작가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으나 계엄 후 공식적인 루쉰 수용이 단절되었고 중국으로부터 분리하여 본격적으로‘대만 문학’을 확립해나가면서 루쉰은‘중국’의 작가로 변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둘째, 대만에서 루쉰 수용사에 대한 연구가 이미 상당히 누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시기부터 현대까지 관련된 역사자료가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루 쉰은 실제로 대만을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연구자료는 주로 신문, 문예지, 출판물, 작가들의 자서전 등이며 이는 범위를 넓혀 연구할 토대와 필요성이 마 련되어있음을 의미한다.
3.2 한국의 루쉰 수용 연구
한국에서 루쉰은 식민지시기부터 수용되었다. 수용사가 긴 만큼 연구도 많이 이루어진 편이며, 수용 양상 또한 다양하다. 루쉰을 한국에 소개한 제1세대 연 구자는 류수인, 이육사, 정내동, 김광주, 이명선 등의 지식인들이었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통치와 냉전체제 속에서 연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매우 활발하게 수용되고 연구되었다.
한국 루쉰 수용사의 단초를 마련한 학자로는 김하림, 박재우와 김시준 등이 있다.13 이들은 한국의 루쉰 수용양상과 저작 번역상황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현 대 중국의 문학가 중 루쉰만큼 한국에 소개된 작가가 없으며 한국에 미친 루쉰 의 영향은 상당한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하림은 식민지시기 부터 대략 70여년간의 수용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었으며, 1980년대 이전의 한 국은 루쉰의 전기, 소설 작품을 위주로 수용했기 때문에 루쉰을 해석하는 데 있
한국 루쉰 수용사의 단초를 마련한 학자로는 김하림, 박재우와 김시준 등이 있다.13 이들은 한국의 루쉰 수용양상과 저작 번역상황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현 대 중국의 문학가 중 루쉰만큼 한국에 소개된 작가가 없으며 한국에 미친 루쉰 의 영향은 상당한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하림은 식민지시기 부터 대략 70여년간의 수용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었으며, 1980년대 이전의 한 국은 루쉰의 전기, 소설 작품을 위주로 수용했기 때문에 루쉰을 해석하는 데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