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후시기의 루쉰 이해
4.2 루쉰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동아시아적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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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참여하는 명분이다.‛91처럼 임헌영은 루쉰을 통해서 70년대의 한국 사회 현 실에 요구된 시대 정신을 보여준다. 루쉰과 그의 문학은 시간적 제한을 넘어 당 시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작용을 했음을 알 수 있다.
4.2 루쉰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동아시아적 교류
70년대 나온 루쉰의 작품은 대부분『외침』,『방황』,『고사신편』등 소설집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테면 1974년에는 장기근의 『 세계문학전집13: 노신과 그의 소설』(대양서적)이, 1975년에는 성원경(成元慶)의『아Q정전』(삼중당)과 이가원 의『아Q정전〮광인일기』(동서문화사) 및『아Q정전』(삼성출판사)이, 1977년에는 하정옥(河正玉)의『아Q정전』(신아사)이, 1978년에는 장기근의『노신단편집』(범 조사)과 허세욱(許世旭)의『아Q정전』(범우사) 등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야 루쉰의 잡문 및 산문시가 보다 집중적으로 번역되기 시작 하였다. 1980년에는 성원경의『세계문학대전집22: 노신작품』(태극출판사)이, 1982 년에는 허벽(許壁)의『노신의 고향 외』(연세대 출판부)가, 1983년에는 박병태(朴 炳泰)의『노신선생님』(청사)과 강계철(姜啓哲)〮윤화중(尹和重)의『아Q정전』(학 원사)이, 1984년에는 성원경의『아Q정전』(정원문고)이, 1986년에는 김시준(金時 俊)의『노신소설전집』(한겨례)과 김진욱의『아Q정전』(글방문고)이, 1987년에는 박운석(朴雲錫)의『그림 아Q정전』(지식산업사)과 한무희(韓武喜)의『노신문집』
(일월서각)이, 1989년에는 김시준의 『 루쉰소설전집 』 (중앙일보사) 등 적지 않은 양의 작품이 나왔는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한무희가 번역하여 출간된『루 쉰문집』(전6권)으로 루쉰의 소설에 대한 출판에서 벗어나 산문시와 잡문에 대 한 번역으로 확장되는데 기여한 것이다. 한무희의『루쉰문집』은 1983년 다케우 치 요시미가 번역해 출간한『루쉰문집』을 중역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루쉰 잡문집의 번역과 출판은 80년대 이후 현대 중국문단과 문예사조의 변화에 관심 이 증가했으며 후기 루쉰 작품을 중시하는 등 루쉰에 대한 전면적 접근이 대두 하였음을 의미한다.
90년대에 오면 루쉰의 잡문집 및 서신집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를테면 1991
91 박재우, 앞의 글, 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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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에 이욱연(李旭淵)의『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창), 유세종의『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창), 박정일의『노신선집』(여강)과 안영신의『아Q정전』(청목) 등이 출판되었다.
역자에 따라 루쉰에 대한 이해 각도와 평가도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성 원경은「노신, 그 인간과 문학세계」라는 글에서‚암흑이야말로 루쉰의 평생의 적이었다. 그만큼 암흑 속에 있으면서 광명의 미래를 끝까지 믿었던 사람도 드 물 것이다. 루쉰의 문학은 ‘논쟁의 문학’이었다고 한다. 수필이나 사회비평이 그 랬을 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자서전, 학술논문마저도 거의 논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력을 기울여 시대의 암흑과 격투한 자취인 것이다.‛92라고 루쉰을 평가 하며 전투적이며 강인한 작가로 이해하고 있다.
이가원도 성원경과 비슷한 시각으로 루쉰을 보고 있다. 그는‚루쉰의 작품은 어둡다. 한없이 어둡다.「아큐정전」같이 하나의 전형적인 풍자적 해학소설의 경 우에도,「고향」처럼 회고적 감상을 수반하는 서정적 필치에서도 사건이나 인물 이 부조될 때 그 기조에는 항상 치유될 수 없는 비애와 적막이 흐르고 있다. 극 도로 상징화된 산문시「야초」에 있어서도, 역사상의 인물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회화화하거나 현대화한「고사신편」에 있어서도 그 기조의 어두움 은 변함이 없다.‛93고 하면서 루쉰문학 속의 암흑면과 끝없는 투쟁의 비극을 강 조하고 있다.
허세욱은 루쉰의 문학을 전기, 후기로 양분하여 인식하고 있다.‚전기 27년이 다만 애국적이요 애족적이며, 계몽적이며 사실적인 시기라면, 후기는 사회주의적 이며 공산주의적이며 전투적이요 비판적인 시기랄 수 있다.‛94고 주장하며 루쉰 이‚갑자기 과격한 공산당으로 선회한 것은 계급의식의 대두와 무산계급을 대신 한 투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도 크게 양분되었다. 전기가 단편시 대라면 후기는 잡감문의 시대였고.‛95라고 루쉰문학의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
한국에서 루쉰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거의 모방한 듯한 창작은 90년대 들어 와서 나왔다. 류양선의「광인일기」가 바로 그것이다.
92 성원경,「노신, 그 인간과 문학세계」,『아Q정전』, 삼중당, 1975, 247면.
93 이가원,『아Q정전〮광인일기』, 동서문화사, 1975, 500면.
94 허세욱,「노신론」,『아Q정전』, 범우사, 1978, 11면.
95 허세욱, 위의 글, 11-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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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사람’이라고 하면 재미있을 거아. 노신의「광인일기」처럼 말야.…아하, 그 러고 보니 민선생 일기가 어딘지 그「광인일기」를 닮았더구만! 사람을 잡아먹느니 어쩌니 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노신은 예교를 비판한 것이 아닌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역사적 전 환기에 봉건사상을 타파하자구 한 거구. 뭐 다를 게 있나?… 결국 사람 잡아먹으라는 게 아 니고 뭔가?… 하여간 노신의 말대로 우리 고함이라도 질러봄세.96
위와 같이 류양선의「광인일기」결말에서 알 수 있듯이 류양선은 소설 제목 뿐만 아니라 소설의 서두, 일기체 문장의 삽입, 주제 등에 있어서 루쉰의「광인 일기」구조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데다가 등장인물 민교수가 후에 정신질환에 서 회복되는 줄거리도 루쉰의 작품과 동일한 플롯이다.97 또한 그는 소설의 시대 배경을 1991년으로 설정했는데, 그것은 당시 한국군부정권과 격렬한 대립구도를 이루고 있던 사회를 배경 삼아 루쉰이 제기했던 근대 문제가 현대의 한국에서도 미해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였다는 해석도 있다.98 이로 보건대 현재까지도 루쉰문학의 영향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광덕은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루쉰 연구는 처음부터 사 회주의 중국에서 정의한 루쉰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며 마오쩌뚱의 루쉰 평 가를 어떤 형태로든 의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99 그 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 을 실시하면서 이데올로기에 의한 폐쇄적 태도를 버리고 각종 서구문화를 수용 하는 동시에 루쉰문학을 포함한 중국문학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을 도입하고 그동안의 제한과 금기를 풀자 한국의 루쉰연구 역시 중국의 이러한 연 구경향과 함께 바뀌어 온 셈이다. 이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신식민주 의라는 세계적 추세 하에서 지역간 연대라는 시대적 요구가 부상하자 한국 학술 계는 역사적으로 서구에 의해 규정된 근대와 동양관점을 넘어서는 동아시아의 시각을 새로운 루쉰 연구를 통해 수립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중국, 일본, 한국, 대만 사이의 근대경험을 검토하고 식민지와 냉전으로 분리되었던 연대를 회복하 고자 노력하고 있다.
상술한 바 연구자마다 루쉰에 대한 평가와 수용양상에 있어서 차이점이 다소
96 류양선,「狂人日記」,『창작과 비평』20권3호, 1992, 135-136면.
97 김하림, 앞의 글, 545-546면에서 참조.
98 김하림, 앞의 글, 546-547면.
99 서광덕,「동아시아 담론과 루쉰 연구」,『중어중문학 34』, 2004, 467-48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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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만 각 시기마다 지식인들이 루쉰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정리하면 1989년 해금 이후 한국에서 더 이상 제한을 받지 않 고 다양한 연구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한국의 루쉰문학 연구 는 점차 확대되고 심화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1993년 11월 중국 현대문학학 회에서 주최한 ‘제3회 중국현대문학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중국〮일본〮대만의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루쉰의 문학과 사상’이란 주제를 발표하며 토론을 했 다.100 이제 동아시아의 각 지역의 학계가 루쉰이라는 동일 주제를 놓고 학술적 교류와 대화를 시도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100 김하림,「韓國에서의 魯迅受容樣相」,『중국인문과학12』, 1993, 5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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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결론: 루쉰이 매개한 역사인식과 문학향방
중국의 신문학 역사라는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작가로 공인받은 루쉰(1881-1936)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남기고 간 현대중국의 위대한 문인이자 또한 사상가 이다. 그의 문학과 사상은 중국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루쉰의 영향력과 파급력에 걸맞게 루쉰문학 의 출현과 거의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각국의 입장에서 국소적이고 국지적으로 행해져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연구는 각 나라의 실정에 입각한 연구의 특수성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국경을 아울러 통시적이고 거시적으로 루쉰의 영향력을 고찰해보기에는 다소간 한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 해 대만과 한국의 예를 들어 루쉰의 문학정신과 사상이 동아시아라는 더 넓은 층위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 분석해보고자 했다. 대만과 한국은 근대초기에 일제강점에 의한 식민지배라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동아시 아의 중소국이라는 지리적 교집합을 공유하고 있는만큼 중국 본토에서 연유한 루쉰문학과 연구를 유사한 시대현실에 비추어 그때 그때 연구하고 수용해 온 공 감대가 존재한다. 이것이 루쉰연구의 비교고찰의 출발점으로 한국과 대만에 초 점을 맞추게 된 주된 이유이다. 본문에서는 대만과 한국의 식민지시기부터 해방, 그리고 격변의 근대화 시기인 70년대 전후까지 약 50년 남짓의 시간 속에 자리 한 루쉰에 대한 수용의 방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양국의 동시대적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라는 평면에서 거시적으로 자리매김한 루쉰의 사상과 정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를 요약, 정리하면 다
이러한 연구는 각 나라의 실정에 입각한 연구의 특수성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국경을 아울러 통시적이고 거시적으로 루쉰의 영향력을 고찰해보기에는 다소간 한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 해 대만과 한국의 예를 들어 루쉰의 문학정신과 사상이 동아시아라는 더 넓은 층위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 분석해보고자 했다. 대만과 한국은 근대초기에 일제강점에 의한 식민지배라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동아시 아의 중소국이라는 지리적 교집합을 공유하고 있는만큼 중국 본토에서 연유한 루쉰문학과 연구를 유사한 시대현실에 비추어 그때 그때 연구하고 수용해 온 공 감대가 존재한다. 이것이 루쉰연구의 비교고찰의 출발점으로 한국과 대만에 초 점을 맞추게 된 주된 이유이다. 본문에서는 대만과 한국의 식민지시기부터 해방, 그리고 격변의 근대화 시기인 70년대 전후까지 약 50년 남짓의 시간 속에 자리 한 루쉰에 대한 수용의 방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양국의 동시대적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라는 평면에서 거시적으로 자리매김한 루쉰의 사상과 정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를 요약, 정리하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