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후시기 문화계의 魯迅熱
2.2 루쉰 서거 10주년 기념과 대만 문인들의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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迅像)」(1946.11.4)을『신생보(新生報)』(新地, 94기)에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그 는『대만문화』와『화평일보』에도「루쉰선생을 애도한다―중국의 첫 신사상가 (弔魯迅先生—他是中國的第一位新思想家)」와「중국 목각판화의 보모―루쉰(中國 木刻的保姆—魯迅)」이란 글을 각각 게재했다.
그(루쉰)는 위대한 민주투사다. 인간이 악한 세력을 이기는 과정에서 그는 마침내 ‘제 국’,‘봉건’,‘침략’의 포위를 돌파하여 민주의 역량을 집결시켰다. 50년 간 적으로부터 유린과 약탈을 당한 대만은 이제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적 재건을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신생 문화의 수립에 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신문화 사업을 위 해서는 많은 예지자, 선각자의 지지와 추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60
이처럼 황룽찬은 대만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원하고 있었다. 또한 루쉰의 반 제국〮반봉건 사상을 통해서 문화재건을 하고자 했다. ‘조국의 품’으로 회귀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지식인들의 인식 속에 대만과 중국은 하나로 간 주되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이루지 못한 이념과 포부들을 대만이라는 ‘초 생의 땅’에서 펼치고 싶었던 것이다. 이로써 쉬서우상을 비롯한 중국에서 온 여 러 지식인들은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대만의 문화재건을 위해 5.4신문학 및 신 문화운동을 대만에 알리고 보급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2.2 루쉰 서거 10주년 기념과 대만 문인들의 호응
식민지통치를 받아온 대만사람들은 광복 이후 언어와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중국을 학습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중국화’ 기조 속에 중국의 근대문화와 관련 된 정보와 신지식, 특히 5.4운동이 일어난 뒤 나온 신문학 작품과 작가들이 대량 으로 대만에 소개되었다. 특히 루쉰에 대한 비평 소개가 가장 눈에 띈다. 통계적 으로 보면 당시 대만 3대 일간지『대만신생보』,『중화일보(中華日報)』,『화평 일보』에 루쉰을 언급한 글이 32편이나 되었고, 1946년 10월 19일 루쉰 서거 10 주년 기념일에는 3대 일간지 모두 동시에 루쉰을 기념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
60 黃榮燦,「弔魯迅先生—他是中國的第一位新思想家」,『台灣文化』1권 2기, 1946, 13면. 원문:
‚他偉大民主的戰士…他在人類戰勝惡力的巨聲中…終於沖破了「帝國」,「封建」,「侵略」底 包圍…團結了民主的力量。…在經過敵人五十年蹂躪和掠奪的臺灣又回到祖國的懷抱來,一切文化 重新開始建立,這初生的文化感到了需要他,因為今天新文化事業需要許多的支持和推進的,預知 者,先覺者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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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61 또한 『대만문화』도 루쉰서거 10주념 특집호를 간행했는데, 당시 대만에 서 루쉰사상이 얼마나 유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대만의 루쉰문학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던 대만작가로는 양쿠이와 란밍구(藍明谷)를 들 수 있다. 일문소설 「 신문배달부 」 로 유명한 양쿠이(1905-1985)는 식민지시기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1946년에서 1949년 사이에 중국문 학작품을 일어에서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작가였다. 당시 대만에 서 중국어를 처음부터 다시 학습해야 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중국어〮일어 대조 형식으로 나온 중국문학작품이 11권이나 출간되었는데, 양쿠 이가 맡은 번역이 거의 반을 차지했다.62 그 가운데 루쉰의 작품이 가장 많이 선 정되었는데 이는 루쉰을 비롯한 중국작가를 통해서 중국 근대 신문화 및 신문학 의 핵심을 파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양쿠이는 번역 작업 외에도『화평일보』
문예란의 편집장으로 루쉰을 적극 소개하곤 했다. 이를테면 그는 루쉰 서거 10 주년을 계기로『화평일보』의 문예란에 쉬서우상의「루쉰과 청년(魯迅和青年)」
(1946.10.19)과「루쉰의 덕행(魯迅的德行)」(1946.10.21), 후펑(胡風)의「루쉰정신의 대해서(關於魯迅精神的二三基點)」(1946.10.19)를 게재했다. 양쿠이 본인도『화평 일보』에「루쉰을 기념하다」(1946.10.19)란 시를 발표함으로써 루쉰의 전투정신 을 높이 찬양했다. 양쿠이가 루쉰을 이렇게 중시했던 까닭은 그가「아Q정전」서 두에 쓴「루쉰선생(魯迅先生)」이란 서문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늘 피해자 및 억압받는 계급의 친구로서, 피를 흘리며 거듭 분전하는 생활을 보냈다.…선생은 불굴의 전투적인 생애를 통해 전투의지를 강화시켰으며 전투조직도 견고하게 유지시켜 나갔다.…내가 이번에 번역한「아Q정전」은 루쉰의 대표작이자 루쉰이 악의 세력과 보수주의에 내린 사형선고이기도 하다. 모두가 꼼꼼히 읽고 느끼기를 바란다.
우리는 악의 세력과 보수주의를 철저히 배척하지 않은 이상,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61 黃英哲,「戰後魯迅思想在台灣的傳播」,『國文天地』7권 5기, 1991, 175면.
62 중국어〮일어 대조판본은 楊逵 저, 胡風 역,「新聞配達夫」, 台灣評論社, 1946; 魯迅 저, 楊逵 역,「阿Q正 傳」, 東華書局, 1947; 魯迅 저, 王禹農 역,「狂人日記」, 標準國語通信會, 1947; 郁達夫 저, 楊逵 역,
「微雪的早晨」, 東華書局, 1947; 魯迅 저, 藍青 역,「故鄉」, 現代文學研究會, 1947; 楊逵 저, 胡風 역,
「送報伕」, 東華書局, 1947; 茅盾 저, 楊逵 역,「大鼻子的故事」, 東華書局, 1947; 魯迅 저, 王禹農 역,
「孔乙己‧頭髮的故事」, 東方出版社, 1948; 魯迅 저, 王禹農 역,「藥」, 東方出版社, 1948; 沈從文 저, 黃燕 역,「龍朱」, 東華書局, 1949; 鄭振鐸 저, 楊逵 역,「黃公俊的最後」, 東華書局 등이 있다. (黃英哲,
「戦後初期台湾の文化年表1943-49」,『台湾文化再構築1945-1947の光と影—魯迅思想受容の行方』, 創土社, 1999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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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63
양쿠이는 루쉰을 ‘피압박 계급의 친구’로 규명함으로써 대만사람의 처지와 교 묘하게 연관시켰다. 양쿠이가 일어에서 중국어로 번역한「아Q정전」이 1947년 1 월에 출판되었는데, 당시 대만사람은 천이정부의 통제 하에 놓여 있었다. 권위주 의에 눌려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늘 차별 대우를 받던 대만 민중 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던 터라 루쉰의 전투정신이 다시금 중시되었다. 해 방 이후에도 계속 ‘압박받는’ 대만사람이 이제 루쉰문학을 읽음으로써 힘을 얻 어 국민당정부의 ‘권위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양쿠이의 주장이었다.
양쿠이 또한「아Q정전」에 나온 아큐가 동그라미를 치는 장면을 특화하여 천이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1947년 1월 잡지『문화교류(文化交流)』에「아큐 의 동그라미 그리기(阿Q畫圓圈)」란 글을 발표했는데, 대만에 건너와서 부정부 패만 저지른 지배 계급을 ‘파렴치하고 신의를 배반한 선비(禮義廉恥欠信之士)’로 비유했다. 그리고 양쿠이는 「 현실이 우리에게 한번의 외침이 필요하다고 한다 (現實教我們需要一次嚷)」란 글에서 세상에 아큐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역설하며 만약 아큐가 한 일이 대만 혹은 중국의 문학계에 기여한다면 반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 신문학을 건축하는 데 쏟은 진심과 정성을 아큐정 신에 비유함으로써 본래 유명한 작중인물 아큐에게 또다른 새로운 긍정적 이미 지를 불어넣었다. 양쿠이는 이상의 세계를 꿈꾸는 사회주의자로서 늘 루쉰처럼 대중과 같이 서 있었고, 통치 계급을 냉정하게 비판했다. 이렇듯 식민지시기의 항일정신을 이어 전후시기에도 지배계급과 불평등 정책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 었던 대만의 실황을 양쿠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란밍구(1919-1951) 역시 양쿠이와 마찬가지로 중국문학의 번역〮소개 작업을 하 던 대만작가로서 루쉰의「고향」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베이징에서 문학을 전공 하고 졸업한 뒤, 대만에 돌아와 편집과 국어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중 학교에서 루쉰을 가르치면서 대만 청년 학생들의 국어(중국어)교육을 위해 루쉰 의「고향」을 번역해 교재로 만들어 펴낸 바 있다. 그 책 역시 중국어〮일어 대 조본이었고, 란밍구는 이 책의 서두에서 「 루쉰과 고향 」 이란 비평문을 썼는데
63 魯迅 저, 楊逵 역,「魯迅先生」,『阿Q正傳』, 東華書局, 1947, 3-5면. (楊逵 저, 彭小妍 편,
『楊逵全集3』翻譯卷, 2001, 31면에서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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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걸쳐 루쉰에 대한 존경이 넘쳐 흐른다.
그는 끝까지 싸웠다. 아니다. 병이 들어 침대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라고 해야겠 다. 그는 전쟁터 후방에서 지시를 내리는 리더일 뿐만 아니라, 민중과 어울리며 민중을 이 해하고 민중과 함께 싸우기도 했다.…「고향」이란 작품은 楊二嫂같은 인물의 암흑면을 폭 로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힘들게 분전하고 있는 閏士같은 순박한 인물에 대한 동정과 연민 이 주제이다. 묘사의 형식에 있어서도 과거의 객관적이며 풍자적인 수법과 달리 농후한 서 정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64
이 글에서 란밍구는 국민당정부의 지배 하에서 여전히 제국주의와 집권세력에 서 벗어나지 못했던 대만사회의 현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루쉰의 전투정신 및 반항정신을 내세워 대만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 으려고 했던 것이다.
전후시기의 대만은 중국에서 온 좌익작가와 대만 본토작가들의 루쉰문학에 대 한 소개를 통해서 상호교류가 진행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하는 등 문학계는 매우 활성화되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중국에서 온 좌익 작가 들은 대만 내부의 문화 건립을 위해 루쉰문학에 담긴 반봉건과 민주정신 등 사 회주의사상에 치중했는데 비해 대만 본토작가들은 루쉰문학의 가치를 긍정적으 로 평가하며 루쉰의 전투정신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의 불합리성에 저항하려고 했 다. 즉, 대만 지식인은 루쉰의 비판정신에 입각하여 천이정부의 불평등 정책과
전후시기의 대만은 중국에서 온 좌익작가와 대만 본토작가들의 루쉰문학에 대 한 소개를 통해서 상호교류가 진행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하는 등 문학계는 매우 활성화되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중국에서 온 좌익 작가 들은 대만 내부의 문화 건립을 위해 루쉰문학에 담긴 반봉건과 민주정신 등 사 회주의사상에 치중했는데 비해 대만 본토작가들은 루쉰문학의 가치를 긍정적으 로 평가하며 루쉰의 전투정신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의 불합리성에 저항하려고 했 다. 즉, 대만 지식인은 루쉰의 비판정신에 입각하여 천이정부의 불평등 정책과